한적한 골목 어느 곳…붉은 지붕 위 쏟아지는 햇살, 시간도 느리게 흘러간다

입력 2016-02-15 07:00   수정 2016-02-15 10:12

크로아티아를 처음 찾았을 때, 자그레브공항에서 내려 시내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고 10여분이 채 지나지 않아 왜 유럽인들이 크로아티아를 그렇게 여행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래된 골목을 따라 늘어서 있는 붉은 지붕들, 그리고 그 지붕들 위로 쏟아져 내리는 눈부신 햇살. 사람들은 밝고 온화한 표정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고 건물마다 들어선 고풍스러운 카페에서는 수많은 여행자가 느린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사랑한 ‘모토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 ‘지중해의 낙원’. 아드리아해를 일컫는 말이다. 길이가 800㎞에 이르는 아드리아해는 슬로베니아 북부에서 이스트라 반도를 거쳐 알바니아까지 이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오르해안이다.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와 마주 보는 크로아티아는 빼어난 풍경과 온화한 기후로 오래전부터 유럽인에게는 잘 알려진 여행지다. 쪽빛 바다와 대리석 건물, 붉은 기와지붕이 어우러진 크로아티아의 풍경은 여행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수도 자그레브나 아름다운 해안도시 스플리트 등 크로아티아의 도시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어딘가 낯이 익다는 느낌 혹은 언젠가 와본 적이 있다는 기시감을 느끼곤 한다. 어쩌면 이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보고 열광해왔던 ‘미래소년 코난’을 비롯해 ‘빨간 돼지’ ‘마녀배달부 키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등 그가 만든 수많은 애니메이션이 크로아티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빨간 돼지에서 돼지가 비행기를 타고 누비던 바다가 바로 아드리아해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주인공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던 곳이 두브로브니크다.

세계 3대 진미 송로버섯으로 유명

이스트라 반도는 우리에게 그다지 잘 알려진 지역이 아니다. 가이드북에서 구할 수 있는 정보는 수도 자그레브와 두브로브니크, 플라트비체 국립공원 정도다. 아직 국내 여행자들에게는 미지의 지역으로 남아 있는데, 그나마 조금 알려진 곳이 풀라(Pula)다. 이스트라 반도의 최대 도시이기도 한 풀라는 18세기 말까지 베니스, 합스부르크,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다. 시내 곳곳에는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콜로세움을 비롯해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풀라와 가까운 모토분(Motovun)은 해발 277m의 절벽에 자리 잡고 있는 邦?마을이다. 영화 마니아 사이에서는 모토분 국제영화제로 알려져 있다. 까마득한 절벽 꼭대기에 자리 잡은 탓에 멀리서 보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모토분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델이 된 마을이라고 한다.

마을은 아담하다. 천천히 걸어서 두 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마을 인구는 1500명 정도. 오래된 벽돌 건물 사이로 좁고 가파른 골목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그리고 이 좁은 골목을 옛날 자동차들이 부르릉거리며 돌아다닌다.

모토분은 푸아그라, 캐비어와 함께 세계 3대 진미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송로버섯으로 유명하다. 송로버섯은 인공재배가 되지 않고 생산량도 아주 적어 ‘식탁 위의 다이아몬드’, ‘요정들의 사과’ 등의 애칭으로 불린다. 프랑스, 이탈리아 일부 지역과 크로아티아 모토분에서만 나는데 땅 속에 파묻혀 있어서 사람의 힘만으로는 채취하기가 어려워 냄새를 잘 맡는 사냥개를 앞세워 수확한다. 큰 것은 상황버섯처럼 생겼지만 콩알 크기에서부터 손가락 마디 크기, 어린애 주먹 만한 크기 등 제각각이다. 조금만 음식에 넣어도 “아, 송로버섯 들어갔네”라고 할 정도로 그 맛과 향이 상쾌하다.

고대 로마의 흔적 곳곳에서 발견

모토분에서 미니버스로 40분 정도 떨어진 포레치라는 곳도 흥미로운 도시다.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3세기에 기독교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됐고 오랜 세월 비잔틴 제국과 베네치아 공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고 한다. 이런 까닭인지 곳곳에 로마 건축물과 중세 기독교 성당의 흔적이 남아 있다.

포레치 시가지를 걷다 보면 길에 깔린 반질반질한 돌에 눈길이 간다.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원형 그대로라고 한다. 데쿠마누스 거리와 유프라지이예바 거리가 당시의 거리인데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에우프라시우스 성당과 만난다. 성당은 고전적 요소와 비잔틴 요소가 독특한 방식으로 잘 결합돼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스트라 반도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두브로브니크에 비견될 만큼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 아드리아해와 접한 로비니라는 도시인데 언덕 위 우뚝 솟은 유페미아 사원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로비니를 상징하는 이 아름다운 건축물은 이스트라 반도에서는 가장 큰 바로크식 건물로 종탑의 높이가 57m에 달한다.

로비니 역시 느긋한 걸음으로 산책하는 게 어울리는 도시다. 아드리아해의 찬란한 햇살은 붉은 테라코타 지붕 위로 폭포처럼 흘러넘치고 에메랄드빛 바다는 햇살을 튕겨내며 여행자의 시선을 어지럽힌다.

여행 팁

인천국제공항에서 크로아티아로 바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크로아티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크로아티아 관광청(croatia.hr)을 참조하자. 크로아티아의 화폐 단위는 쿠나(kuna). 1쿠나는 약 220원이다. 이스트라 반도는 크로아티아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 청포도 말바지아가 많이 재배되며, 검은 포도 테란도 있다.

모토분·포레차·로비니=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ssocho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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